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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선생은 전북 임실(任實) 출신으로 1912년 이석용(李錫庸)이 의병 활동 재개를 위해 조직한 임자동밀맹단(壬子冬密盟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석용은 전북 임실 출신으로 1907년 8월 26일 전북 진안(鎭安)에서 거의하여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동년 9월 12일 밤 전북 고창(高敞)의 일본군 병참부대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 소각하였다. 한편 이석용은 용담(龍潭) 심원사(深源寺)에서 김동신(金東臣)의 삼남창의소(三南倡義所)와 합세하여 의병 300여 명을 이끌고 일본군과 접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8년 9월 임실전투(任實戰鬪)에서 패한 뒤 의병진을 해산하고 잠행 유랑하였다. 그 후 이석용은 1912년 비밀결사대 임자동밀맹단(壬子冬密盟團)을 조직하고 의병의 재기를 준비하였다. 그 단원은 곡성(谷城)의 유인수(柳寅秀), 안자정(安子精), 조영선(趙泳善), 조우식(趙愚植) 등 과 남원(南原)의 김경호(金景浩), 김인식(金仁植), 허간(許幹), 허주(許柱), 허업(許業), 조성민(趙成珉), 김학수(金學洙) 등이었다. 이 비밀결사대는 직접 전투에 참여치는 않았으나 모병(募兵)을 비롯하여 무기·군자금·군수품 등을 보급하고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최창렬은 비밀결사대 임자동밀맹단(壬子冬密盟團)의 단원으로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모병을 한다거나 군수품을 보급하여 이석용의 의병 활동을 후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