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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酉年(기유년)에 「合二成一非古非今(합이성일비고비금) 琴調失今古家間翁(금조실금고가간옹)」의 降詩(강시)로 庚戌國恥(경술국치)를 미리 感知(감지)한 孫義庵先生(손의암선생)은 日帝侵略(일제침략)에 대한 警戒(경계)와 아울러 獨立運動準備(독립운동준비)에 事前計劃(사전계획)을 세우며 物心兩面(물심양면)으로 全力(전력)을 다하셨다. 韓半島(한반도)는 地政學的 位置(지정학적위치) 때문에 大陸(대륙)과 海洋勢力(해양세력)의 進出(진출)로 因(인)하여 寧日(영일)이 없는 角逐場(각축장)이 되었었다. 己未獨立運動은 日帝의 굴레서 벗어나 韓中日(한중일) 세나라가 鼎足(정족)의 勢(세)로 東洋(동양)의 安定勢力(안정세력)을 構築(구축)하고 東洋平和(동양평화)로 重要(중요)한 一部(일부)를 삼는 世界平和人類幸福(세계평화인류행복)에 必要한 階段(계단)을 만들어 東洋全局(동양전국)이 共倒同亡(공도동망)의 悲運(비운)을 防止(방지)하자는 것이 根本 目的(근본목적)이었다. 孫義庵先生(손의암선생)의 獨立運動準備(독립운동준비)를 미리 感知(감지)한 任實(임실) 崔承雨(최승우) 金榮遠(김영원) 韓永泰(한영태)는 己未 二月 末頃(기미2월 말경)에 全州 老松洞 李君弼 (전주 노송동 이군필) 집에 全羅北道代表(전라북도대표)들과 獨立運動(독립운동)을 展開(전개)하기 爲(위)하여 두 차례나 모여서 秘密會談(비밀회담)을 가졌으며, 崔承雨(최승우)는 宣言書(선언서)를 任實(임실), 南原(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