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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저녁 남원 헌병분견대와 임실경찰서에서 무장한 병력이 대거 출동하여 시위대열과 대치하다가 무자비한 발포로 일단 해산되었으나, 시위군중은 300~400명씩 무리를 지어 이튿날 새벽까지 계속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튿날부터 단행된 검속에 의하여 붙잡힌 이기송은 7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이기송 선생의 집터는 밭으로 변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