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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형제는 시례의 정훈을 받드러 효우상당하고 우우형제하면서 자가에서 사숙을 개설하여 후진양성에 전력하면서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일방 비밀리에 친족교우들을 회합하여 일제추방을 도모하는중 때마침 기미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어러나자 이곳 남원에서는 4월 3일 당시 덕과면장인 재종형 매호공 석기가 주도한 도화동에서 식목을 가장한 수백군중이 독립만세 함성을 지르면서 남진하고 일방 도로보수 명목으로 형기및 성기 용기 형제가 주도하든 수백군중은 세명당에서 만세를 고창하며 북진 양방이 합세하여 일경 사매주재소를 점령하였든 중 석기외 수인이 남원헌병청으로 피체되니 그날밤 형기외 친족들과 명 4일 남원북시장에서 군중대회를 개최할것을 모의하고 제 용기는 읍내 객주 이봉춘방에 가서 언론인 천년조등을 포섭하여 대형태극장을 그리고 대한독립기 사매면이라 대서하고 수기및 격문 수백매를 제작하여 형 성기등은 인근 삼합여부락민을 철야동원하여 4일 여명 남원으로 잠입하여 하오 2시경 남원북시장에서 용기가 3장 태극기를 휘두르고 형기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니 수천군중은 이에 호응 만세를 절규하면서 헌병청을 포위하고 애제는 물러가라고 항쟁하니 오ㅔ헌의 무차별 발포로 사상자 다수였다. 형제는 즉일 체포되여 옥고중에도 당당이 항변하였고 제 용기는 가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35세에 遐世(하세)하고 형 성기는 출옥동지 35인과 영춘계를 조직하고 계속 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