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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도 남원은 예로부터 많은 충의열사를 배출하여 왔다. 고려말 왜구를 물리친 황산대첩,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지키려다 장렬하게 순국한 만여 명의 민관군, 그리고 한말 국권이 기울자 영호남 의병의 선봉장이 된 양한규 등이 이 고장의 뜨거운 충절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조상들의 연면(連綿)한 애국혼이 1919년 4월 3일 이석기에 의해 덕과면과 사매면에서 독립만세의 첫 함성으로 울려 퍼졌다. 4월 4일 남원 장날에는 북시장터인 이곳에 수천 명이 운집하여 또다시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으니, 이는 실로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남원인들의 드높은 의기와 애국심의 발로라 하겠다. 이후 박기영의 대한국민회 설립과, 한태현의 조선독립대동단 전북지부 조직, 이두용의 남원청년동맹과 형평사 및 신간회, 그리고 운봉에 농민조합을 결성하여 소작료 불납운동과 강제 부역동원을 거부한 임철호 등, 이 지역 우국열사들은 국내 혹은 만주로 활동 무대를 옮겨 가면서 암암리에 항일투쟁을 지속해 나갔다. 그 밖에도 독립자금을 모금하여 상해 임시정부로 보냈는가 하면, 초등야학회를 열어 농민들과 어린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참혹한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조국광복과 민족의 자존을 위해 의연하게 적과 맞서 싸운 지사들이 적지 않았다. 이에 선열들의 숭고한 구국행적을 기리며 그 뜻을 이어 이 땅을 지키고 후손들에게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이고자 남원 4.4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던 이곳에 항일운동 기념탑을 세운다. 2005년 10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