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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찬서 1873-1919 「청사에 빛날 투혼에서」 남원 출신 독립투사 황찬서는 3.1만세운동때 남원에서 만세운동을 지휘하다가 왜병의 흉탄에 맞아 중상으로 치료받던 중 순절했다. 그는 기미운동 전에는 항일사상을 주민들에게 불어 넣기 위해 세금불납 토지불매 운동 등을 전개하기도 했었다. 1977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전규문 1889-1944 「전북지방 애국지사 약전에서」 1906년 섣달 의병을 지휘 남원의 왜병 둔지 광한루를 습격하였고 전공은 26세의 열혈 장신으로 선봉장을 맡으셨으니 이로부터 전대장이란 칭호도 시작된 것이다. 이때 왜경은 무장된 병력이었으나 전공의 충렬을 당할 수 없어 散散敗走(산산패주)했다. 1977년 건국훈장을 받았다. 정한익 1890-1977 「청사에 빈날 투혼에서」 기미년 4월 4일 남원에서 죽창들고 감금동지 구출 목적으로 선두지휘 왜헌병대를 습격했을 때 왜경이 발포한 총탄에 관통상을 입자 왜병원에 입원을 거절하고 한약으로 치료했다. 기력이 회복되어 왜경서장을 저격하려다 실패하여 왜경에 체포되었다. 1977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박기영 1892-1938 「남원군수 건립 묘비문 중에서」 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선언이 있은 뒤 대한독립을 목적으로한 대한민국회를 결성하고 그 대표가 되었으며 1920년 3월 1일을 기하여 제2독립선언을 계획하였다가 실패하여 왜경에게 피체 비인도적 고문과 3년의 옥고를 치렀다. 1980년 건국훈장을 받았다. 박권영 1899-1952 「왜경 형사공판 기록에서」 지사 박권영은 조선독립을 企圖(기도)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재 중국 상해임시정부에 송부할 것을 협의하고 1920년 11월 19일 전주 다가산 산림 중에서 상해임시정부 특파위원장 명의로 된 권유문을 작성하여 도처에서 군자금을 모집한 일로 옥고를 치렀다. 1980년 건국훈장을 받았다. 이두석 1912-1947 「전북지방 애국지사 약전에서」 1929년 형님과 수양전진계를 조직 야학교의 개설 등으로 항일독립정신을 고취하고 渡日(도일) 8년간 敵地(적지)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1938년 왜경에게 피체되었다. 일본 柛戶(신호)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죄로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77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