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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남원군 주생면 부동리에 거주한 전주이씨 성령대군의 후손 회언의 3대독자로 일찍이 흠재 최병심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리에 정통하고 천성이 강직하여 백절불굴의 기품이 과인하였다. 망국의 한과 배일사상이 만공했던 공은 삭발, 창씨 개명등 왜정이 날로 포악하여지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등 남원성 함락의 통분과 경술국치를 크게 꾸짖는 수왜십죄 죄문을 각처에 유포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여 항일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던중 왜경의 심지로 강포 호소를 받기에 이르렀다. 공은 피체되느니보다 정정당당하게 대결할것을 다짐하고 주생주재소에 찾아가 그들의 죄상을 논박하다가 폭동이라고 부르면서 포박하려던 왜경을 려성질책하며 내가 너희들에게 곤욕을 당하기보다 차라리 깨끗이 자결하여 우리 삼천만 민족의 숙괴를 표명하리라하고 비수를 꺼내어 자문하였다. 단번에 동맥이 끊어지지 않으니 선혈을 왜경에게 뿌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두번, 세번 거듭 혈맥을 잘라 자결하였으니 때는 민국 24년 임오년(1942) 5월 23일이었다. 호생 오사는 온 천하의 상징이기로 국록을 먹던 세도가들도 감히 못하던 살신성인의 의로를 포의한 자로서 33세를 일기로 애석한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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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참조 : <a h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wwoolim&logNo=100154340149 target=_blank>블로그 늦꽃지기</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