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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마을 산곡(山谷)마을 우리 마을은 모씨(牟氏)가 처음 정착하였다고 알려져있으며, 조선시대 전국 읍지인 「여지도서」에 의하면 본래 산성리는 교룡산성 안에 있는 마을로 18가구가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이주하여 산성안에는 마을이 없어졌고, 산성 동쪽에 있는 마을을 가리켜 교룡산에 매혈이 있고 교룡산 골짝에 있다하여 응곡(應谷 또는 응실)이라고 불렀다 한다. 교룡산성 안에는 통일신라시대 사찰인 선국사가 있는데 선국사는 국난시 호남지역 6개 군현에서 거둔 군량비를 교룡산서에 보관하므로써 승군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또한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사찰내 은적암에 머룰며 동학의 교리를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교룡산성은 조선말엽 동학난이 일어났을 때 김개남장군이 이끄는 동학군이 주둔하면서 동학군의 훈련과 작전을 수행했던 곳으로 곳곳에 많은 우물과 초소, 훈련장 등 흔적이 남아있다. 동문(홍예문)은 당초에 있었던 4개 성문 중 유일하게 남아 축조 기법의 정교함과 세련미를 보여 준다. 본래 산곡 마을은 왕지전면(王之田面)에 속하였으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성리와 응곡리를 병합하고 각 마을의 이름 글자를 따서 산곡리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