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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의 3.1만세는 한일합방에 저항하는 통분한 함성이요 자유와 독립을 되찾으려는 비장한 절규요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국권을 유지 계승하려는 당당한 주장이였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구별이 없이 한 덩어리로 뭉쳐진 거대한 불길의 폭발이였다. 그러므로 삽시간에 삼천리 방방곡곡에 번져 하늘이 뻐개지고 땅이 흔들릴듯한 맹렬한 기세였다. 이러한 정당한 평화적인 발기에 대하여 왜적의 탄압은 어떠하였는가? 잔인하고 악독한 교살과 형벌이였다. 이해 남원에서도 4월3일 이형기의사 주동으로 조동선 김해근, 천형조, 이성기, 이풍기등 여러의사가 단목장에서 4월 4일에는 이병기의사주동으로 읍내시장에서 수만군민과 함께 태극기 이 물결을 이루면서 독립만세를 소리높이 불렀다. 이때 방극용,김홍록, 방호주, 박재길, 방제환의사는 현장에서 무자비한 왜적의 총칼아래 순국의 영령이 되고 말았다. 이 숭고한 3.1정신을 이어받아 창간한 동아일보사는 유서깊은 이곳에 이 기념비를 세워 그 거룩한 정신을 만대의 후세까지 길이 받들어 드높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