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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보내 동경 유학생 대표 송팔용의 주선으로 오세창 등 요인과 면담하고 독립운동에 대한 지시와 독립선언문을 지참 귀향하여 상세히 현황을 보고받은 공은 이를 근거로 친족과 동지를 규합 거사에 대하여 세밀한 계획을 세웠다. 1차는 덕과 이매면민을 동원하고 2차는 남원읍에서 전군민을 동원하기로 결정하고 각부서를 정하고 임무를 부여하였다. 공은 거사에 따른 준비를 갖추고 3월 31일 면장직을 사직한 공은 군내 17개면과 산서 지소 오수 등면장에게 거사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 격문을 작성 동지 편에 배부하고 운동에 동원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4월 3일 식수기념일에 이매면민 2백여명은 게명당 고개에서 도로 보수를 하게하는 한편 덕과면민 3백여명은 도화동 뒷산에서 식수를 하게 하였다. 작업을 마치고 귀가시인 오후 2시경 격문과 태극기를 나눠주고 공은 군중 앞에 서서 격문을 낭독한 후 태극기를 높이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니 군중들은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공은 선두에 서서 이매헌병분소로 향하였다. 한편 도로 보수하던 이매면민은 덕과면민들의 만세소리에 합창하여 합류 헌병분소를 습격하였다. 이에 당황한 왜병들은 남원헌병청에 연락 기병대가 긴급 출동하여 주동자인 공 외에 5명이 체포되어 남원으로 압송당하고 군중들은 총검으로 위협 강제 해상시켰다. 공은 압송당하면서 「여러분 우리는 비록 왜놈들에게 끌려가나 감방에서 계속 만세를 부를 것이요, 오늘의 독립운동을 전군민과 같이 합심 대한독립을 위하여 싸워주시오」라고 당부하였다. 검거되지 않는 동지들은 계획대로 범수 성기 두기 형기 등은 이튼날 남원장날을 이용 동원된 군민 천여명을 북시장 동서남북 사방향으로 각각 나누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헌병청을 습격하고 애국동지들을 즉각 해방하라고 외쳤다. 이 의거에서 왜병들이 난사한 흉탄에 사망이 다수요, 부상자가 수십명이나 되었다. 이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