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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박준상 항일공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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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상은 전북 남원 운봉에서 1925년 4월부터 1929년 2월에 걸쳐 이명수(李明壽) 등 사회주의자의 지도를 받아 신사상을 받아들이고, &#985172자본주의의 기구&#985173 등 사회과학 서적을 강독, 연구하였다. 1931년 11월 25일 안희탁(安禧鐸)·임철호(林喆鎬)·박종암(朴鍾岩)·박순영(朴舜永) 등과 함께 한국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남원청년동맹 운봉지부를 재조직하였다. 남원청년동맹은 1927년 8월 12일 결성되었고 운봉지부는 이듬해에 결성되었다. 그러나 운봉지부는 남원 형평사(衡平社)와 운봉 권농회(勸農會)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면서 1929년 3월 13일에 열린 예정이었던 정기대회가 관할 주재소로부터 금지 명령이 내려지는 등 제대로 활동을 못하게 되자, 이때 재조직하려고 했던 것이다. 재조직된 운봉지부에서 박준상은 박순영과 함께 농민부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소작료 불납운동과 강제 부역동원을 반대하였다. 운봉지부는 표면적으로 ‘운봉단발회(雲峰斷髮會)’를 결성, 일반인에게 단발의 필요함을 선전하는 한편, 이발업까지 경영하여 이발요금을 운동자금으로 활용하였다. 이 자금으로 각종 사회과학 서적들을 구입하고, 이를 통해 신사상을 고취하였으며 운동자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 사건(속칭 ‘운봉단발회 비사사건’)으로 1932년 9월 남원경찰서에 체포된 박준상은 1933년 4월 1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 70일 통산)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그러나 1934년 2월 1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1934년 칙령 제19호에 따라 징역 1년 9월 17일로 변경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