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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忠三義士追慕碑(일충삼의사추모비) 일본이 강압적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하다 1907년 3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남원읍에서 왜군들을 기습공격하다 순절한 양한규 선생과 그 휘하에서 활동했던 진사 박재홍,참봉 양문순 선생의 공적을 기리는 추모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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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忠三義士追慕碑(일충삼의사추모비) 남원은 고칭 碓府而忠孝義烈之士가 배출而昔我 선조조에 양공 응원은 무과로 관직이 충무위좌부장에 오르다. 임진란을 당하여..중략.. 고종 을사늑약이 되자 지역내 울분을 토하는 의사가 많았다. 초계군수 양한규 진사 박재홍 참봉 양문순 세공이 이들이시다.三義士는 울면서 말하기를 왜적은 같이 하늘아래 지낼수없는 원수이니 필히 섬멸해야한다. 각자 전답을 팔고 곳집을 쌓고 병기를 만들고 수천의 지사를 모아 하늘에 고하고 행군하니 병오12월그믐날이다. 밤중에 남원주둔 왜병을 습격하고왜병하고 장병들이 사기가 충천하였으나 초계양공이 가슴에 총탄을 맞아 돌아가시니 사기 저하되고 군세가 무너지자 박양일공은 전술을 변경하였지만 결국 피체되어 전주감옥에 갇혔다가 경성감옥으로 이감당하여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으나 굴복하지 아니하였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진도로 유배되었다. 대사면으로 유배지에서 풀려났지만 심한 여독으로 돌아가시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