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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 황석 선생 충의 사적비 우리는 동방의 문화민족으로서 국권을 지키고 보전하기 위하여 외침이나 경국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일신일가를 다받쳐 나라를 구한 충신열사가 수없이 이어저 왔으니 이 곳 수월에서 출생하신 석정 선생의 충의 또한 만인의 사표가 될 것입니다.선생은 가숙에서 수기치인의 학문을 닦았고 약관에 향시에 급제하여 장차 대기감으로 향당의 추앙을 받았고 43재에 음직 중직대부 광릉령에 제수 되었으며 갑오란이 일어나자 급거 귀향 의병대장이 되어 민란을 진압하였고 을미년 국모시해때와 을사조약때는 호남의 제유와 거의 결사항거코저 하였으나 늑령으로 해산되자 울분으로 향리에서 두문중 경술국치가 되자 명운을 나라와 같이 하려다가 신자의 성충을 다하는 마음으로 마을 앞 무산봉에 기두대를 쌓고 10년을 하루같이 북향망배 절행을 실천하였다. 고종황제 부문에 접하여 애통 또 애통 절명시 「선고유언일미성 불충불효치위생 기미입춘전 2일 호연차서 쾌오정」을 남기고 자문하였으나 미수하고 6일 후 재자 성인하시니 황제 인산 익일이다. 선생의 충절탁행이 일제의 억압과 세파에 묻혀 가려졌으나 근년 선생의 유집을 찾게되어 그 사적이 알려지자 이를 계기로 전국각지의 유림들이 선생에 대한 존모하는 마음을 일으켜 미성 모았으며 임오년 8월 15일 정부의 포상이 있었고 전라북도와 남원시의 지원에 힘입어 선생의 생가 마을에 충의기적비를 세우게 되니 늦게나마 어찌 다행스럽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 비 앞에 옷깃을 여미고 선생의 충의정신을 기리고 나아가서 후생들로 하여금 귀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