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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강제체결되자 덕유산을 거점으로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든 의사들이 계시니 의병대장 문공태서와 박공춘실을 비롯 많은 의병들이시다. 단성문공 태서는 충선공 익절의 24세소이며 문공병현의 장자로 1880년 3월 16일 함양군 서상면 장구동에서 태어나셨다. 어려서부터 지,인,용을 두루 갖추었다. 18세에 장수군 계북면 당저로 이사해서 김경여의 딸과 결혼했다.25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박처사로부터 용병술과 총포술을 배우고 을사년에 최익현과 창의를 모의한뒤 덕유산에서 포수 수십인과 창의하니 먼저 50여인을 이끌고 온 박춘실장군과 박수문, 전성보, 신탁광, 이병렬부대를 양악에서 맞아 호남의병단을 결성했다. 총참모장에 문태서, 선봉장에 박춘실, 중군장에 전성보, 후군장에 신탁광, 비서에 박수문으로 정하고 의병 300여인으로 단 편성을 마쳤다. 문공은 신출귀몰하는 전법으로 농소, 문성, 토옥동, 원통사, 고창,곡구, 천동전투와 장수주둔수비대 이원역습격작전등 연전연승 적을 놀라게 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합방이후 왜군의 강세에 몰려 재기를 도모코자 귀향중 1912년 8월 17일 왜군에 체포되어 대구를 거쳐 경성(서울)으로 이감 모진 고문에도 위풍당당했으며 1913년 2월 4일 박춘실과 동지들을 부르면서 지하에서도 조국을 수호하리라는 절규를 끝으로 향년 34세에 장열한 최후를 마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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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박공 춘실은 박공?? 휘언의 16세손이며 박공 상순의 장자로 1875년 10월 13일 진안군 안천면 와정리에서 태어나 장수군 계북면 백암리에서 성장하셨다. 장성하면서 뛰어난 용력과 기백으로 사람들을 압도했다. 31세에 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동지를 규합 구봉산작전에서 첫승리를 거두고 덕유산으로 이동하여 선봉장으로서 무,진,장,안의, 거창등지에서 종횡무진 유격전을 펼쳐 접전 수백회에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특히 적장산전투에서는 적이 호랑이로 부를만큼 용맹을 떨쳤다. 문태서장군이 체포된뒤 총쥐휘장이 되어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1913년 11월 수천의 왜군과 토옥동에서 접전, 필사적으로 항쟁했건만 장군은 부상을 입고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감옥을 부수고 동지 백여명을 탈옥시켜 재투쟁케 하는등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가 1914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