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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청련재 권중원 선생(1860~1910) 위는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국가건설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 대통령표창, 대통령 문재인, 2019 - 선생은 1907년에서 1910년 사이에 전북 진안에서 이석용이 거의할 때 교유하며, 협의 지원하고 이석용 의진에 군자금을 제공하였으며 이석용의 가족들을 은신시키는 등의 활동을 함. 이후 이석용에게 협조한 사실들이 발각되어 집과 문서가 전소되는 등 참화를 당하고 도피하던 중 사망함.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2019 - 선생은 1910년 여름, 향년 51세로 돌아가셨다. 대략 1905년의 을사늑약 이후부터 분하고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때마침 호남의 의사 이석용이 창의의 계획과 전략을 선생에게 알려오자 절의로써 힘쓰고 이를 권장하면서 비밀리에 소통함이 많았다. 일이 드러나 왜병이 와서 선생의 집을 포위하고 불을 질렀다. - 한천사고, 홍양 이환용, 1951 - 본래 재주와 의기가 있던 공은 망극한 시대를 만나 섬 오랑캐들이 잠식해 오자 항상 적개심을 품어오더니 정미년의 의로운 사건에 함께 참여하였다가 흉도들에게 무너뜨림을 당하여 집과 서적들을 모두 잃는 피해를 입으셨다. 밤낮으로 나라와 집안걱정에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시다가 병을 얻어 1910년에 세상을 뜨시니 나이 51세였다. - 추범 문원, 추범 권도용, 1955 - 이웃 고을에서 기병하자 공께서 그에 가담하신 결과 그 화가 미쳐 모든 것을 탕진해 버렸다. - 중재 선생 문집, 중재 김황, 19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