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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군 3.1 독립운동 발상지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륙 침략을 위하여 한본도를 지리적 교두보로 삼고자 우리 나라를 1910년에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우리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 노예가 되었다. 1918년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자, 우리 민족은 민족자결주의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1919년 1월 고종의 승하와 함께 항일의식이 높아지고 일본에 유학 중인 조선인 학생들이 조선기독교 청년회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는데, 이것이 2.8 독립선언 사건이다. 이 사건은 3.1 독립운동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 사건을 접한 국내 인사들이 모여 민족대표 33인을 정하고 1919년 3월 1일에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비무장, 무저항을 원칙으로 시위를 전개하였다. 3.1 독립운동은 주요 도시로 전개되었고 이 소식이 무주에 전해지게 된 때는 3월 7일이었다. 당시 전주 신흥학교에 다니던 여울교회 학생들이 소식을 전하자,소식을 접한 전일봉은 신앙의 동지로 사귀었던 무주읍 교회 승희중과 두길교회 김재순을 찾아 거사를 논의했다. 여울교회에서는 전기봉, 하태선, 한판익, 서재순이 함께 했으며, 이외에도 교회와 마을 청년들과 무주 보통학교 생도 신재희와 박찬수도 함께 하였다. 기독교 신앙으로 모인 그들은 태극기를 만들어 1919년 4월 1일 오후 2시에 무주 장날, 장터 한가운데서 전일봉이 나라의 실정과 3.1독립운동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자고 외쳤다. 군중들은 "옳소"하는 함성과 함께 준비한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무주 시내를 행진했다. 이렇게 무주군에 3.1 독립만세 운동은 시작되었고,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군인들이 함께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무주군은 이곳에 동상을 세워 그분들의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숭고한 뜻을 후대에 전하고자 한다. 2007년 3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