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page


3page

그러나 나제통문은 알려진 바와 다르게 삼국시대 뚫어진 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굴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인근 금광에서 채굴된 금을 쉽게 옮기고 농`임산물을 신속하게 운반하기 위해 뚫었다는 기록이 무주군청지인 '적성지'에 전한다. 나제통문이란 이름도 1963년 무주구천동 33경을 만들면서 일제 흔적이 있는 '기니미굴'을 바꿔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 출처 : 매일경제 하지만 무주군의 읍지인 적성지(赤城誌)는 1898년에 만들어졌다. 인터넷에는 191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설명과는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