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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로 작정하고 사흘동안 밥을 짓지않으니 그제서야 마음을 돌렸다. 고종황제께서 승하하자 높은 산에 올라 하루내 통곡을 했고 서울로 향하다가 병을 얻어 아드님 민호와 삼종제 재우만을 올려보냈다. 민호가 서울에서 기미독립운동의 선언문을 가져오자 이제 우리나라의 해와 달이 다시 밝으리로다 말씀하시고 만세시위를 일으킬것을 결심하셨다. 마침 이때 상백면에서는 정현상이 독립만세선언서를 가져와 그 백형인 정현하에게 전했고 또 이기복도 이원영한테서 선언서를 구해 왔는데 두 사람의 은밀한 운동을 한갈래로 통합한부이 정인빈였으며 선생도 이에 호응하기에 이른것이었다. 1919년 3월 18일 삼가장날을 기해 손에 손에 태극기를 높이 들고 수 많은 군중이 독립만세를 절규하다가 왜경의 무자비 무차별 발포로 해산을 했으며 이날 민호가 체포되어 진주감옥으로 넘어갔다. 선생은 이에 굽히지 않고 동지를 규합하여 다시 23일에 4천여 면민이 상백면사무소부근 일대를 누비며 만세시위를 했고 면사무소를 불태웠다. 삼가면민 가회면민과 합류해서 크게 위세를 떨쳤다. 놀라고 당황한 일본경찰이 마구 총탄을 퍼붓고 칼을 휘둘렀으며 선두에 서서 시위를 주도하던 선생께서 가슴에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때 빗발치는 총탄속으로 김익장 정방영 두 청년이 뛰어들어 선생을 업고 나왔지만 이미 숨을 거두신후였다. 선생께서 순국하신지 60여년 국가에서는 대통령표상으로 그 공을 기렸고 종손 영규가 뜻있는 분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