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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12대장 권석도 공적비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43-1-46 / 관리자 : 문중대표 이 공적비는 권석도(權錫燾: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 의병장의 전적을 기려 2004년 7월 31일 건립하였다. 권석도 의병장은 을사조약을 늑결하고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키자 크게 분노하여 김동신(金東臣) 의병진에 참가하였다가 고광순(高光洵) 의병진과 합류하였다. 1907년 10월 11일 고광순이 전사하자 남은 의병을 이끌고 계속 활동하였다. 동년 12월 21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서 박인환(朴仁煥) 의병진과 합류하였으며, 박인환 등의 추대를 받아 의병장이 되었다. 이후 그는 지리산을 거점으로 하동·함양·구례 등지에서 항쟁하였다. 1908년에는 하동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던 중 동년 6월 26일 하동 일본수비대에 피체되었다. 하동주재소에 구금 중 그는 1908년 7월 9일 탈주에 성공하여 도피하다가 일경의 추격을 받아 흉부에 총상을 입기도 하였다. 1909년 3월 그는 다시 이학로(李學魯) 의병장과 합세하여 신주 서면 동양곡(東陽谷)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며 활동하던 중 1909년 10월 10일 진주에서 다시 일경에 피체되어 6년 9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가출옥하였다. 또다시 1918년 2월 일경으로부터 다시 강도사건의 누명을 쓰고 10여 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1918년 12월 1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출옥하였다. 이 당시 일경의 고문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회복되지 못하였다고 한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일경의 소위 요시찰인 감시가 극심하자 그는 가족과 함께 포항·울진 등 낯선 고장을 전전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