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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의당 차공 홍렬 의적비 연안 차씨의 조상 중에는 충절로 나라의 표창을 받고 사림의 제향을 받고 있는 세분이 계신데 그 유택이 오세 이후까지 끊어지지 않았다. 그 후에 다시 한 자손이 있으니 이름은 홍렬(한렬)이요 자는 경범이며 호는 의당이라. 애국자로 칭송되었고 신사년(1912년 1월)에 돌아가셨다. 돌이켜보건데 창주와 같은 문장가가 없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이 세상에 칭찬되거나 알려지지 못하니 이 곳의 모든 사람들이 이를 슬프게 여겨 그의 아들 치운(재호) 정규(재완) 인규(재준) 형제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성태촌 입구에 비석을 세우도록 권하였다. 그의 아들 세 사람은 일가 족숙인 계희씨가 지은 유사 한통을 가지고 정진회권과 함께 나를 찾아 왔는데 유사의 내용을 살펴보니 족형 홍렬씨는 어려서부터 청빈하였으며 비록 보잘것없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나 의기는 드높았다. 경술년의 분을 품고 통탄하며 「오백년 성스러운 나라가 갑자기 왜놈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으니 이 무슨 일이며 이를 어찌한다는 말인가」라고 하였다. 날마다 복수의 계책을 생각하다가 기미년에 이르러 전영우 이민헌 두사람과 독립운동을 모의한 후 이빨로 전화선을 끊고 적의 관사를 부수며 만세를 불러 왜놈의 괴수를 쫓아 보냈다. 며칠 후 왜놈의 괴수가 무기를 갖추어 다시 돌아와 수색하고 심하게 고문을 하자 의제 이교수씨가 화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권했지만 듣지 아니하고 름연한 모습으로 적에게 대항하였고 극심하고 흉악한 형욕을 당하였으나 그 의혐심만은 조금도 굴하지 아니하였다. 어찌 이와 같은 사람이 옛날 장허와 같은 사람과 비교하여 손색이 있겠는가. 미루어 보건데 어버이를 사랑하는 효도로 지극했으리라. 사십육세에 생을 마쳤고 부친은 상팔 포부는 무순 증조부는 만수이며 차씨 문중의 포상으로 잘 알려진 김렬공 운혁의 십구세손이다. 이제 그의 공적을 이 비에 새기노니 애국의 충의가 가득한 한마디 독립만세 소리가 온 누리를 떨쳤도다. 형벌은 비록 혹독하엿으나 의기는 추상이라 나의 이 새기는 말씀은 아첨이 아니며 숨겨진 빛을 세상에 밝히고자 함이라. 서기 1980년 진양 강상필 지음 서기 2000년 안동 김영식 씀 서기 2000년 1월 23일 연안치씨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