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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신라의 해거름 나절 법은을 보답코자 한 구중인의 뜻이 가야산 골짝 홍류동 물소리 사이로 현당암 마당에 절집 기둥 이습는 도끼소리로 울려왔었다. 반천년 조선조가 기울던 서기 1891년 4월 2일에 그 고을 경남 합천군 묘산면서 독립운동의 지사로서 ○생한 윤중수 공이 고고의 소리 높이 태여났은 즉 본관은 파평인 자는 시백으로 만송을 호 삼았다. 신묘년에 출생하고 신미년에 영면하니 41세의 생애였다. 상조 태사공 화달의 5세손인 문숙공 예당군의 후예로서 고의 휘는 석우이고 호는 화산이다. 공은 어려서 한학하다가 시천에 따라 개화를 사상하고 대구 달성고보를 거쳐 서울보성전문학교를 다녔다. 마침내 경술국치를 당하매 울연 분발한 공은 조국광복의 길에 헌신코저 입지하였다. 경향 곳곳을 순역하면서 주로 유림 중에서 동지를 구하고 규합하여 자주독립을 추구하는 정치운동단체로서 유림단을 조직하는대 선배 동지인 김창숙과 더불어 주도적으로 활약하였다.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