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page


211page

마을 입구에서 윤중수 선생의 공적비를 만났다.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한 한국유림들의 파리장서 서명운동에 함경남·북도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그는 김창숙·성태영·유진태·유준근 등과 파리강화회의에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는 한국 유림들의 의사를 집약한 파리장서를 제출키로 결의하고, 3월 4일 성태영의 집에서 다시 동지들과 모임을 갖고, 이 자리에서 함경남·북도의 서명운동 책임자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는 직접 파리장서에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미서명자 제2진 23명 중의 한 사람이며 1925년 제2차 유림단 독립운동을 배후에서 주동하였다. 그후 1921년 11월 11일에는 미국 워싱톤에서 개최되는 태평양회의에 제출한 한국독립진정서의 합천군 대표로 서명하였으며, 그후에도 신채호·김창숙 등과 연락을 취하면서 계속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