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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땅에 총독부를 설치하고 헌병경찰제로 우리의 자유와 생존권을 박탈하고 무단정치가 자행되는 시기에 지사는 1925년 3월 합천 초계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교)에 입학한 수재였으며 일제의 강점이 그 도를 더해감에 따라 한일 학생의 차별대우가 심해갔다. 이에 분격하여 일어난 1929년 11월 광주학생사건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경성지역에서 민족적 울분에서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일어났으니 당시 제1고보 학생이던 지사는 분연히 일어나 선두에 서서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을 적극 전개하다가 1929년 12월 27일 퇴학 처분을 당함과 동시에 잔학한 일본 경찰의 체포령으로 만주로 망명하여 계속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일시적인 고국길에서 왜경에 체포 수금되어 형을 받고 석방은 되었으나 살육적인 고문의 후유증으로 1933년 4월 10일 열혈의 애국지사는 청운의 학창시 절을 조국에 바치고 20세를 일기로 원통하게 영면했다. 묘는 황정리 작은골 우좌원에 안장했다. 배는 안동손씨 필순 여사이고 1980년 8월 13일 유명을 달리했으며 묘는 쌍분이다. 1998년 8월 15일 건국50주년을 맞이하여 정부에서 지사의 공훈에 보답하는 건국포장이 추서되니 지사의 대의와 공적이 후세에 길이 겨레의 등불로 빛날 것이다. 이에 지사의 건국 공적을 새기고 읊노니 조국이 간두에 서서 운명을 다할 적에 왜적에 짓밟힌 산하 저항으로 맞섰으니 이 한 몸 불사르며 피 흘려서 바쳤도다. 일제의 사슬 피해 만주 땅에 말을 달리고 광복의 꿈 안고 유폐도 달게 받았으니 한 생애 펼쳐 살피면 의열단심 빛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