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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략 ··· 선생의 자는 자원 호는 연암 시조의 34세손이며 파조인 양영공의 17세손이며 임란창의장 십경정 선생 휘 영의 11세손이다. 선생은 1906년 을사늑약 다음해인 2월 19일 경남 합천군 초계면 원당리 258번지에서 태어났다. 품성이 영명하고 어릴적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학문을 좋아하며 지기가 광대고명하고 실천에 힘썼다. 장성함에 사천년 보존한 국가를 일본에 침탈당한 것을 매우 슬퍼했다. 나라를 찾는 것이 민족의 살길이라 생각하고 독립운동에 내 한몸 바칠 것을 결심했다. 의병항쟁 비밀결사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향리에서는 독립정신을 계도 고취했다. 선생이 30세에 충남 논산에 천지인을 섬기는 삼신교에 들어가서 조국독립 계몽인이 되어 일본은 전쟁에 패망하고 조선은 반듯이 독립한다는 내용으로 선전하고 합천 초계 창녕 유어 성주등지를 순회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서기 191943년 경북 성주에서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일본은 미영독 대국에 밀리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일본은 반듯이 패망하고 조선독립이 될 것이라는 내용을 선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과 육군형법 위반으로 1년여 옥고를 치루고 1944년 6월 21일에 출옥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광복되었으나 좌우사상의 갈등 남북분단 6.25전쟁 등 격동기에 우익단체인 합천군민회 초대의장으로 피임되었다.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유증으로 1953년2월 1일 47세에 생을 마쳤다. 배 유인 광주노씨 재욱의 녀이며 2녀를 길렀는데 서에 이정환은 성산이며 외손에 헌방 헌각 헌세이고 차서에 이기연은 성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