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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지사 연암 김영조 선생의 관향은 선산김씨이며 신라 문성왕 8세손 고려 삼한 통합 벽상공신 삼중대광 문하시중 휘 선궁 시 순충공이 시조이다. 고려 500년간 국운을 융성하게 한 문무겸전한 명상 거경과 충신 의리와 예절을 숭상한 현인군자가 뇌락상망하여 고려사에 찬연한 빛을 발하고 있다. 조선조 초에 시조의 17세손 휘 교는 세종조에서 성종조까지 5대왕을 섬긴 문무겸전한 주석지신으로 조야의 중망을 받은 현신이다. 15세에 성균관 생원 진사시에 합격한 천재로 무과에도 급제하여 위국충절을 받쳐서 국기를 다지고 국태민안을 이룩한 충신이다. 함경도 이시애난을 평정하고 건구위 여진족을 토벌하여 명나라 헌종 황제가 군공을 포상하니 지략과 위명이 명나라까지 진동했다. 관작의 대략은 평안도 병마절도사 겸 평안감사요 내직으로 형조 공조 병조참판을 역임하고 출장 입상한 청백리로 선산군을 봉하고 시호는 양위공이라 한다. 후손에게 교훈하여 학문을 숭상하여 박학하고 심문하고 신사명변하여 정미하고 고명한 경지에 이르고 성의정심하여 일호의 사욕과 일호의 사심도 없는 광명정대한 마음을 양성하고 충효예를 실천 덕목으로 교훈을 삼아 전자전손했다. 2자를 두었는데 휘 수미 수영은 모두 군수이며 연암 선생은 차자인 수영공의 후손이다. 선대의 교훈을 준수하고 박학하고 충효하고 청렴결백하고 명망있는 분만 거명하면 충의위를 지낸 휘 연 사헌부 집의를 지낸 휘 적 세마을 지낸 휘 ○ 직장을 지낸 휘 억○ 병사를 지낸 휘 억기 참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