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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1919년 기미 3.1운동이 터지자 3월 15일 윤병석 윤병하 윤병교 윤병은 윤병양 장덕균 한용홍 이우필 성경술등과 모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동지 규합과 태극기 제작등을 비밀히 추진 3월 22일 오전 4시경 노루목에서 전신주를 넘겨 통신을 두절하고 오전 10시 합천군 묘산면사무소앞에서 드디어 거사하여 수백명의 군중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니 이 만세의 함성은 천지를 진동하였다. 맨주먹 평화시위군중에 잔인한 일본 헌병대와 경관대는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거리를 붉은 피로 물들였다. 의사는 사처를 넘어 민중을 재정비 선동하여 맹렬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4월 29일 왜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봉산면 주재소에서 잔인혹독한 고문으로 사경을 넘음이 그 몇번이었던가 5월 4일 진주지방검찰청으로 송칟괴어 6월 27일 진주지방법원에서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진주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당시의 박해와 신산고초가 어떠했으랴 1920년 12월 27일 출감하자마자 또 다사 대한독립만세를 외쳐 재수감되어 3개월후에 출옥되었다. 의사는 모진 고문으로 인한 병든 몸으로 평생을 고통속에 요시찰인물로 감시와 질곡속에서 살아오다 1945년 감격의 해방을 맞이하였다. 일제의 주구 반민족분자의 숙정에 앞장섰으나 친일파정권의 탁세에서 의사는 비분을 참지 못하고 조국통일을 보지 못한 4월 11일 장서하셨다. 그대 불굴의 조국광복투쟁으로 조국대한은 드디어 독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