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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성공하였다. 선생께서는 초계면의 지도대표로서 항일민족운동에 박차를 가하면서 거국적 봉기의 이날을 기다렸다. 기미년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전국방방곡곡에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3천리를 진동하였다. 시기는 왔다. 우리도 늦을세라 손발 맞추어 엄밀히 태극기 제작을 추진 동월 21일 초계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4천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독립선언문 봉독과 동시 휘날리는 태극기의 파도속에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초계면의 천지가 진동되었고 농기구와 투석 맨 주먹으로 초계주재소를 습격 일제만행에 항거하던 당일 오후 5시경 합천경찰서 수비대가 출동 소총으로 시위군중을 향해 무차별 난사함으로써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 시위군중은 산해되고 주동자 9인 전원이 체포 즉시 합천경찰서로 압송 수일 후 진주형무소에 투옥 수감되면서 형언도 표현도 할 수 없는 혹독한 고문에도 피압박민족의 통념과 항일조국광복의 호국정신에는 그 충절과 참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동년 8월 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원 선고공판에서 소요죄목으로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1년 6월의 옥고를 치루어셨다. 아- 이 얼마나 장엄한 희생이 아니랴. 시대적 소명에 뜻을 받들어 진실과 청빈을 디덕으로 후학양성과 조국광복의 이념정신을 전교하시던 중 급환으로 구국의 비통 속에 병자년 1936년 7월 28일 62세를 일기로 장서하셨다. 여기 지난 날의 숨엇든 지사의 독립운동투쟁공적이 오늘날에 밝혀짐으로서 국가로부터 1993년 3.1절에 항일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날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였다. 이 거룩하고도 뜻깊은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