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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외늠름 가야영봉 여기 머물러 한 웅부를 열었으니 가소현 옛땅이라 들은 기름지고 물은 맑아 아름다운 산천은 인걸을 기다려 비로소 빛을 더하니 순후한 인심에 기상또한 스스로 높다. 마을마다 찬란한 사적 적지 아니하나 그 가운데서도 기미만세의거로 온 고을이 떨쳐나서 죽음으로 독립을 부르짖은 일은 길이 청사에 빛날 자랑임이 분명하다. 창의 있는 지 어언 60여년 상금토록 기념비 1수 이룩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던 중 오늘에야 가조 가북 양 면민이 회동하여 피로 얼룩진 자리에 의거탑을 세우게 되니 만시지탄은 있으나 후손으로서 어찌 감격이 없으랴. 기미만세의거는 한민족이 자주 자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분연히 떨쳐일어선 민족적 대의로 그 중에서 오히려 규모가 클 뿐만아니라 경상 북면에서 선단을 획하였으니 이 또한 뜻이 가볍지 아니하다. 3.1만세함성이 이곳 추벽까지 전해지자 평소 일제침략에서 통념하던 충의지사 오문현 김호 어명우 최영순 김호 김채환 신병희 어명철 이병홍등이 가조에서도 의거에 떨쳐 나설 것을 결의하고 극비리에 동지들을 규합하고 있던 차 이를 안 열혈지사 김병직 어명준등이 의분을 참지 못하고 3월 20일 장기리 시장날 정오를 기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고 용산 일헌분견소를 습격하니 이날 뜻을 같이한 창의군중이 4,500에 달하였다. 이에 대한 일제의모진 탄압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거창장날인 3월 22일을 기하여 더욱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기로 기약하고 마을과 마을 문중과 문중마다 대표를 정하여 발기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미리 탐지한 일헌들이 그 주동자들을 무참히도 체포하여 형언할 수 없는 모진 고문을 가하였다. 이 소문이 퍼지자 오히려 의기로 자극된 가조 가북 삼천면민이 손에손에 태극기와 몽둥이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장기로 만학정 뜰에 운집하니 그 도도한 기상은 청천을 뚫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들은 곧 피체중인 지사들을 구출하여 일로 거창읍으로 향하였는 시위행렬이 사포현을 넘을때 미리 포진하고 있던 일헌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히 돌진하는 의거군중의 가슴에 무자비한 총격을 가하니 사포현 흰 벼랑은 온통 사상자의 유혈로 붉게 물들고 말았다. 참으로 저주받을 일제침략자들의 만행이었다. 이날 적의 흉탄에 신문구 배영환 조이록 이석종 허경두등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최상선 최학서 이점준 문철주 곽병준등이 우리 헤아릴수 없는 사람들이 저들의 총칼 앞에 찢기고 쓰러지니 그날의 통한을 어찌 필설로 형언할수 있으랴. 이어 주동인물로 김병직 어명준 김관묵 어명철 김익동 김호 이병홍 강두몽 등이 피체되어 각각 3년 혹은 1년형을 치루었고 오문현 최영순 어명우 김채환등인 피신하여 옥고를 면하였다. 오늘 저 무심한 산천은 말이 없어도 그날 죽음으로 쟁취한 우리의 독립은 더없이 값진 피의 대가임을 증언하고 있다. 여기 돌을 세원 선열들의 의로운 넋을 위로하하나니 호국의 영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