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瀯溪 劉先生 神道碑(영계 유선생 신도비) [역문] 고려 광정대부 밀직사사 사헌부 대사헌 영계 유선생 신도비명 병서 상나라가 주나라로 바뀌는 때를 당하여 두 성을 섬기지 아니하려고 망복의 의리를 지켰던 분에게 내가 선산의 고사리를 캐고 동해의 물로 술을 빚어 그 영혼 앞에 부어 올리고 싶었더니 영계 유공도 그중의 한분이시다. 공의 휘는 환이요 자는 국노라 도첨의 찬성사 견규는 공훈으로 거창군을 수봉하였으니 지금 거창고을이다. 자손들이 거창으로 본관을 삼아 대대로 현달하였다. 고조에 찬은 사온령동정으로 밀직사를 증직 받고 증조에 승은 판전리 상호군이요 조에 해는 진현관 대제학이요 고 흡은 현령이요 비는 기계유씨니 그 아버지는 낭장 백이다. 공은 서기 1337년에 출생하셨는데 어려서 총명하고 겨우 말할 나이에 문자를 알았고 효도와 공손히 하는 도리를 태어나서부터 알아서 딴 음식이 있으면 반드시 부모에게 드렸다. 이미 자라서는 큰 뜻이 있어서 사소한 의리를 구애받지 않았다. 이달암의 가문에 장가들었으므로 인하여 그에게 수학 실지 학문을 전공하는데에 부지런하니 달암이 공을 보낼 때 마나 멀리 바라보면서『내가 닦는 도가 남쪽으로 갔다』라고 칭찬하였다. 평소에 경솔한 동작이 없으며 딴 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가난해도 마음만은 태연하였다. 책상위에 항상 소학을 놓아두고 성리의 깊은 뜻을 탐구하였다. 상스럽고 못쓸 소리는 귀로 듣지 않고 이단의 글과 못쓸 빛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 부모상에 너무나도 슬퍼하였으며 예절도 또한 손색 됨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은 먹지 않고 시묘살이로 삼년상을 마쳤다. 달암공이 칭찬하기를 공은 왕을 보좌할만한 자격자라 하여 과거보기를 권하였던바 한 번에 급제하고 감찰밀직사 도헌을 역임 하였다. 공민왕의 정치가 옮길 무렵에 바른말로 극간하여 정의를 부축한바 많았고 정도를 호위하고 이단을 배척하는 일로 자신의 책임을 삼았다. 고려가 망하자 감음땅 신계로 들어가 영사정을 짓고 그곳에 은거하면서 자신의 취지를 시로 이르되 『잘 있도다. 영계 늙은이는 한가히 정자위에 누워 있도다.』라고 하였고 또 명에는 천명을 즐기며 분수를 알았으니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라고 하였으니 이는 대개 이곳에서 너그러이 지내면서 이 세상의 풍진을 받지 않고 길이 옛 임금만을 생각하면서 여생을 마칠 것을 맹세한 것이며 수차 임금의 부르심을 받고도 이를 불고하고 영락기축 이월 십일에 신계에서 세상을 떠나니 나이 칠십 삼세라 안의군 동리월현리 임좌에 안장하였으니 즉 영사정 남쪽이다. 선비들이 금계에다가 서원을 건립하여 문질공 달암공 학계공 제현들과 함께 배향하였다. 부인은 강양이씨니 그의 아버지 참판원달이 즉 달암이요 할아버지 예가 즉 문질이라 부인이 이러한 법가에서 생장하였기 때문에 그의 부덕이 공의 부인이 될 만하였다. 공보다 칠 개월 후에 작고하여 공의 묘 우편에 부장하였다. 독신 아들 담은 현감이니 고을사람들이 거사비와 사우를 세웠고 생원 정제안은 공의 사위라 손은 두 분인데 항은 전생서령이요 회는 부사정이며 세 손녀는 현감 노계정 상호군 이보원 사인 이속동에게 출가하였다. 증손 현손이하는 많은 위인들이 있으니 평정공 귀손은 청검하고 은혜 베풀기를 좋아하며 나라에 대관이 되었고 그 아우 통정영손진사광손 이들 모두가 가법을 지켜왔다. 참봉 관 참봉숙 통덕완 이들은 문행이 모두 높아서 소리쳤고 금오우 참정자인 덕개의 의물에 다투지 않고 세풍을 이어받음과 의사인 명개는 정유재란에 참여하여 부부가 함께 순절함과 교수 후갑의 출천지효에 명리를 떠나고 도가 있음과 녹봉언일의 효행과 학문이 높아서 백세에 사표가 됨은 모두가 공의 유택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아니함임을 알 수 있다. 장차 신도에 비를 세우고저 후손 동환 진엽 병용 등이 함께 나를 찾아와서 종중결의라 하면서 비명을 요구하는 것이며 거듭 말하는 사람은 고을 유림조종술 임필희 신종삼이들이였었다. 내가 극히 늙고 병들어서 감히 남의 집 선조 사적에 손을 쓰지 않으려 했으나 공의 위대하신 유풍과 절의가 사림에 빛나고 또 지금에 세상 풍조가 좋지 못하여 나라의 가까운 신하와 대대로 내려온 신하들이 임금과 나라를 팔아먹는 등 못할 짓이 없는 이때에 선생의 절의로 하여금 세상에 밝힌다면 교화에 도움이 적지 않겠기에 사양하지 못하고 허락하노라. 명의 도는 충효에 근본하고 행실은 시명에 나타나다 백세토록 먼 느낌은 변두가 이에 향기롭네. 향사하고 축사로 족히 증거 하겠고 강상은 우주를 떠받치고 지절은 성원같이 밝았네. 포은 야은과 비등한 철석같은 그 마음이라. 전날 사람 정확한 평론이니 만고의 강산은 한권의 춘추로다. 만월대는 높았으며 수양산도 좋게 뵈네. 후인들의 노래에서 듣고 알리 월현의 언덕에는 공의 무덤 사척이라 영사정이 있었으니 이는 공의 휴식처라. 위에는 정자 있고 아래에는 무덤이니 뒷사람이 백세까지 우러러 뵈오리라. 깊이깊이 느꼈기에 그 돌에 명하노라. 행주 기우만은 짓고 통훈대부 홍문관교리 초계 정연시는 쓰고 통정대부 비서감승 진성 이문구는 전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