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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남재 유공 희탁 유적비 당 한말하여 영남 좌편 거창고을 위천에 독립의사가 계시니 곧 궁내부주사이신 거창유공 한제 일명 유탁이니 자는 사범이요 호는 남제이시다. 그 선대는 병부상서 문양공 전은 시조요 사헌부 환공은 증조이시며 고는 계흥이요 비는 동래정씨니 고증 을유년에 금원산아래 금곡동에서 태어나시니 기우가 왕성하고 기개는 높고 뜻이 커서 진실로 정의 있는 곳이면 언제나 솔선하니 많은 사람들이 감복하고 흔항하더라. 때는 한일합방을 당하여 기미독립운동이 전역에서 일어나 맨주먹으로 저들의 총탄을 무릅쓰고 회한없는 죽음을 맹서함은 민족의 쌓인 울분과 의열의 발로였으며 비록 일을 일시에 구제치는 못하였으나 실로 후일 광복의 기근이 되었으니 이때 거창의 위천 고을에 그 함성이 심히 높으니 일방 표솔자는 실인 즉 남재유공있으며 그 후 나라가 광복이 됨에 후인들이 그 의로움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분들 사실을 살펴 의거의 사적을 기록하였으며 또 온 종중이 그 선조 영사정 신도비 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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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문] 의사 남재 유공 희탁 유적비 한말 당시 영남 좌편 거창 고을 위천에 독립의사가 계시니 곧 궁내부주사이신 거창유공 한제이니 자는 사범이요 호는 남제이시다. 그 선대는 병부상서문양공 전은 시조요 사헌부 대사헌 환공은 중조이시며 고는 계홍이요 비는 동래정씨니 고종을유년에 금원산아래 금곡동에서 태어나시니 기우가 왕성하고 기개는 높고 뜻이 커서 진실로 정의 있는 곳이면 언제나 솔선하니 많은 사람들이 감복하고 흔앙하더라. 때는 한일합병을 당하여 기미독립운동이 전역에서 일어나 맨주먹으로 저들의 총탄을 무릅쓰고 회한 없는 죽음을 맹서함은 민족의 쌓인 울분과 의열의 발로였으며 비록 일을 일시에 구제치는 못하였으나 실로 후일 광복의 기근이 되었으니 이때 거창의 위천 고을에 그 함성이 심히 높으니 일방표솔자는 실인 즉 남재유공이었으며 그 후 나라가 광복이 됨에 후인들이 그 의로움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분들 사실을 살펴 의거의 사적을 기록하였으며 또 온 종중이 그 선조 영사정 신도비 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