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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고 살피재를 넘어려다가 왜적의 난사를 받아 사상자가 속출했는데 공은 관에 유탄이 관통했지만 의연부동했으며 진주옥에 영어시엔 「내 비록 옥중에서 죽을지라도 집에서 죽는 것만 못하랴」 하시며 언소자약하셨으니 평일에 쌓은 덕을 가히 엿볼 수 있도다. 1년을 지나 석방은 되셨지만 옥고의 여환으로 계해 8월 24일 기세하셨다. 경오년 광복절에 건국훈장이 추서되셨다. 공은 재취하셨으니 연안 이유현의 녀는 서의 중매로 유 1남하니 용우이고 하빈 이씨 현상의 녀는 5남 1녀를 두니 경우는 족제 명익에게 출계하고 수우는 계제 명기에게 출계하고 안우 봉우 길우가 있고 녀는 신창 표정환에게 출가하다. 윤석 윤현 윤경 윤식 이당우 처는 용우 소생이고 윤창 윤철 윤문 김병혁 처, 김영구 처 이규원 처 조미두 처는 경우 소생이고 윤용 윤성 윤식 윤갑 윤적 임기원 처는 수우 소생이고 윤종 윤조 윤동 윤수 김종태 처 배의웅 처는 안우 소생이고 윤학 윤관 윤포 정화석 처는 봉우 소생이며 윤원 윤영 윤태 김영순 처 민관식 처 이정렬 처는 길우 소생이며 표재영 재민 김병원 처는 표서 소생이다. 내외 증 현손은 백수십명이라 다 기재할 수 없도다. 공의 윤자인 용우가 행장을 보이며 「부군의 평일 언행대절을 구씨만큼 알 분이 없다」고 청탁하기에 사양할 수 없어 감히 짓는 바로다. 공의 묘소는 합천 상현리 산 26-2번지 해좌원에 있다. 나라 위해 수적을 토멸함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누가 공처럼 사심없이 총칼 앞에 창기하랴. 공의 의열은 몇 천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