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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문태서와 부장 전주대를 방문하고 애국애정에 불타는 여호의 젊은이들과 합세하여 문태서의 휘하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항일투쟁에 앞장서 덕곡산 무주 구천동을 거점으로하여 치열한 격전 끝에 일경의 주력부대를 섬멸하여 대전과를 올렸으며 1908년 8월 7일 거창읍 가지리 후산 전투에 참여 피나는 싸움을 계속하다 장렬한 전사를 하였으나 시신마저 찾을수가 없었다. 이때 공의 자당 안동권씨는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고자 포악한 일군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전쟁터를 헤매였으나 8월의 폭염으로 부패하고 까마귀가 뜯어간 사체의 더미속에 끝내 아들의 시체를 분별할 수가 없었으니 이는 실로 목불인견의 참상이었다. 이때 공의 나이 꽃다운 20세라. 이 어찌 장하다 아니하랴. 공이 가신지 70 성상 지난 1980년 8월 15일에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장을 추서받으니 부친은 효자이고 형은 독립지사이며 공은 애국지사로 3부자가 모두 국민의 귀감이 되는 집안이다. 선인들의 말에 충은 효의 문에서 구한다 하였으니 바로 이 집안을 두고 하는 말이로다. 슬프다. 공이 산화한지 어언 80년 충용무비한 피끓는 청년으로서 사생취의하고 살신성인한 그 충혼이 우리 겨레의 등대이며 그 흠앙함이 위천물이 곤곤히 흐르는 동안 영원무궁하게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