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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환 의사 사적비(李柱煥 義士 事蹟碑) 본향은 합천(또는 강양)이며 호는 연호이다. 1854년 거창군 주상면 연교리에서 태어나 8세 때 한학에 입문 소학과 충효의 도를 익혔으며, 1910년 5월, 일제 강점시기에 납세 거부 운동을 펴다 일본 관헌에게 잡혀가 협박 끝에 강제로 무인을 찍게 되자 자신의 엄지 손가락을 잘랐다.또한 1919년 1월 22일 고종황제가 원통하게 세상을 떠나자 8일 후인 1월 30일 선영에 성묘를 마치고 주상면사무소를 찾아가 자신의 민적을 찢은 뒤 이곳 침류정에서 절세 시 한 수를 남기고 자귀로 목을 쪼아 자결하였다. 이 의사는 절세 시에서 "나라도 임금도 없는 외로운 백성, 슬프게 바라우는 가련한 정이로다. 삼천리 강토가 비록 넓다고 하나, 70 늙은이는 떳떳하게 다닐 수 조차 없구나(중략), 지하에서 우리 임금 모실 것을 맹세하노라"라 하였다. 이 사적비는 1995년 봄 이 의사의 우국정신을 길이 빛내기 위해 뜻있는 거창 군민들이 "이주환 의사 순절사적비 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 의사 순절 75주년을 맞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으로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