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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양지마을숲 월성의거사적비를 찾아왔다. 거창의 월성의병은 을사조약에 반대하는 의병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무렵 북상면 월성리에서 오일선을 중심으로 김성진,김현수, 하거명, 박화기등 40여 명이 월성서당에 모여 의병 봉기를 결의하고 도총·유격·후군·군수·정보 등의 부서를 편성하고 부대의 이름을 월성의병이라 하였다. 월성의병은 1906년 문태수가 이끄는 호서의병과 제휴하여 싸우기도 하고, 덕유산 의병에게 군수 물자를 공급하기도 하였다. 1906년 9월에는 호서 의병과 연합하여 장수와 무주 고창골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피해를 입혔다. 1908년 구천동 전투에서 하거명과 김권원이 전사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박화기·박수기·유춘일 등이 전사하면서 월성의병의 중추 세력이 꺾이게 되었다. 1910년 이후 의병들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과 진주·전주에서 옥고를 치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