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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하는 중에 애석하게 타계하신 바 있다. 이에 고헌 선생은 고인의 원혼을 위로하고 장례의식과 묘소조영에 갈력하는 한편, 민족의 정기를 고양하신 수파 유지를 계승코자 수파집 편찬을 주도하셨다. 각고 삼개성상후 유집발간을 목전에 두고 천려일실 왜경에 발각되어 부산감옥에 피감되니 당하신 고초 기하이리, 연이나 앙화가 수십명 동조자에 파급될까 심려하여 혼자 질곡을 감수키로 작정한터라, 구개월간 태혼이 전신을 휘감고, 진액이 의대를 침윤해도 오히려 의연한 자태와 불굴의 심혼으로 대치하다가 마침내 유명을 달리하시니, 이 어찌 각골통한의 변고가 아니리요. 오호라 선생의 의협심은 창검의 예봉을 꺽고, 충언직어는 취조관의 간담을 서늘케 한지라, 고헌 선생은 비록 옥중고혼이 되셨건만 솔선하신 대사와 수범하신 의리는 후인의 심전에 세세유전 하는도다. 자고로 왕대밭에서 왕대난다 일렀거니와 탐진안문 또한 여사하다. 순흥인 문성공 회헌의 4세손인 문렬공(휘 원인)께서 논공봉작됨을 계기로 탐진으로 본관을 삼으실세, 파초 헌납공(휘 堵)을 필두로 연6세8인이 효행정려를 받자와 명문혈통을 계승하고, 임란 의병장 지헌공(휘 기종)은 국가에 유공하여 군자감정에 제수되고 후일에 이조참의로 추서되어 국승에 일조하니 실로 세가의 반열이라 선생의 사친은 종수 희노 련 정제 제공이며, 경주 김병석옹은 외조부요 상주 주석진옹은 빙장이시다. 슬하에는 경무 경홍 경인 경록 경식 공이 5남이요, 홍달 홍식 창식 대식 순식 상식 호식 충식 태식 중식 종식 11손은 안문의 동량이다. 삼가 돌아보면 선생은 갑오연전 1893년 8월 초6일에 생신하여 우국일념의 족적을 남기시고 광복연전 1944년 11월 음4일에 졸하시니 향년 51이라, 천수를 못다한 채 영산 무둔곡 선영하 간좌유택에 합부인과 더불어 영면함에 종천지통 망극하다. 참묘박백년을 제하여 장손 홍달 원장이 세인을 교화하는 직위로 인해 선조고를 경모하는 뜻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