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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압정이 우심할 무렵 의령 설뫼고을에서 돈후한 신망을 쌓은 고헌 안여상 선생은 자를 성강이라 일렀다. 선생께서 무릇 대소사에 임하시면 매양 가로되 「의는 인간의 정로라, 비록 천고를 조감하는 예지와 건곤을 통찰하는 안목을 겸전해도 심성이 의에 기반하지 않으면 금수와 다를바 없으니라」고 경계하시매 자중하신 풍모는 중인을 포용하며, 자애하신 성음은 심금을 공명했다. 헤아려 가늠하건대, 고헌 선생은 우헌 안필공의 훈도로 효제충신의 근본을 절차하고 학문이 정박함에 이르러 연파 안방노 성암 안식원 두 분을 사부로 인의법도를 탁마하시니, 원근각처에 명망이 회자됨은 당연지사라, 한편 종숙부 수파 안효제옹의 충절심 도한 선생의 품성도야에 지표가 되고 눌언민행의 척도가 되었음은 극명한 사실이다. 경술년 국치로 4천년 민족사가 단절되자 수파공은 천신만고 망명길에 올라 만주황야에서 항일투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