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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일제가 상지를 수탈할 목적으로 정곡 벌판의 민유지에 대한 경계측량을 실시하여 민유지를 강탈하려 하자 1914년 8월 26일 27일 양일간 남병우 전중진 이진우 남저권 이일우 이정신 남종우 남찬우 공을 비롯하여 700여명의 면민을 동원하여 상지수탈 저지항쟁을 선도하신 바 소위 「정곡벌 난리」였다. 선생께서는 현직면장으로서 이 항일투쟁의 주도자로 활동하신 관계로 1914년 8월 28일 일경에 피체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셨고 이어 소요죄목으로 기소되어 1914년 10월 1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시고 출옥하셨으나 형의 후유증으로 수년간 고생하셨으며 이후 일제의 감시속에서도 항일운동을 계속하시면서 거처의 사랑방에서 후학양성에 진력하시다가 광복을 맞이하셨으나 광복의 기쁨도 잠시 1949년 음 2월 5일에 서거하시니 향년 71세이셨다. 배위는 강진안씨 익 노리의기종의 영교로 정숙단화하시고 효성과 부덕을 겸비하셨으며 무인(1879년) 음 11월 1일에 탄생하셨고 병술(1962년) 7월 2일에 엽세하셨다. 슬하에 5남 3녀를 두시니 충우(출 상태공) 정우, 달우, 만우, 승우 공과 여서로 벽진 이정두 경주 최상현 전주 최경돌 공을 맞이했으며 그 밑으로 많은 외손을 두셨다. 선생의 덕업과 항일애국의 공적이 세월에 묻힌 채 광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던 중 선생의 증손 식현이 증거 자료를 수집하여 정부에 명예 회복을 신청하여 서거하신 지 51년만인 2000년 8월 15일 광복절에 항일운동유공자로서 건국훈장 애족장(제3593호)이 추서되었다. 선생의 유훈과 항일애국정신의 발자취는 역사에 오래도록 빛날 것이며 후손과 후진들에게는 영원한 사표로서 숭앙받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