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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탐하는 바 부귀도 의 아니면 부운 같으니 오직 의를 행하는 탕화에도 두려울 배 없고 부성에도 굴하지 않아 온 세상이 의사로써 일컫는다. 고 밀양박공 진목(晉穆) 자 희도(熙道) 호 남농(南儂)은 근세의 의사이니 일찌기 우리 국토가 왜에게 유린될 즈음 기울어지는 대세를 만회하랴 사력을 다 하고 일이 뜻과 어그러지므로 만주로 가 백산 안희제와 더불어 대한의 독립을 고취한지 수년에 기미가 되니 3월에 서울에 와 만세를 호창하고 드디어 의령 두곡 향리에서 정혜원 동지와 함께 군민을 창도함에 수읍이 다 의사의 지휘에 추종하니 적세의 발호함이 의사 일권의 항적할 배 아니라 중형 지목을 비롯하여 박문일족이 더욱 화망을 면하지 못하고 의사는 간도로 출강하여 권사를 꾀하였다. 익년 8월에 귀향하니 적의 사찰이 자심하매 간신이 호구를 벗어나 다시 복국기모로 이역풍상을 두루 겪고 고독한 광망을 발하기 20여년을 지나 신사에 처자를 거느려 관동 평강에 이우하였으며 을유에 도분이 소청되매 영출 영덕 2자와 함께 국도에 들어오고 경인에 남으로 부산에 가 9월 8일에 60세로 종하고 부인 함안조씨는 의사 삼우일에 종순하니 이 어찌 장렬하지 않겠는가. 슬프다. 일생을 조국광복에 헌신하다 마침내 난중 여사에서 평소의 지원인 통일대업을 보지 못한 채 소연히 관화하니 이미 가신 의사도 의사려니와 종사자의 여한이 오죽할 배 아니라 어찌 천도에 의아를 품지 않으리오. 그러나 현처의 만절과 철사의 승가는 족히 의사 평일의 국가일념을 엿볼 수 있으니 이 또한 지방관민의 협심육력으로 의사의 기의비를 향리에 세우는 연고라 하겠다. 을해 8월 15일 안동 김춘동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