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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신라왕손의 씨족사이다. 신라시대에는 현 경상북도 경주시 외 경상남도 밀양시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점차 현 충청남북도와 전라남북도 경기도 지방까지 확산되어 타지방의 명문으로 번창하였다.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밀성대군의 7세손이신 밀성부원군 휘 언부께서 역임한 태사문하시중의 관작에 따라 문하시공파로 분파하고 고려조 개경의 근경인 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일대에 집성촌으로 형성하여 조선조 중엽까지 수많은 관작과 학사를 배출하고 명문대가로 세거하였다. 현 원당동 선산에는 규정공 찰총비와 90여기의 선조유택을 보존하고 있으며 전국 각 지방의 후예들이 숭조 정신을 모아 매년 춘추로 제향을 봉행하며 경기도지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이후 병자란으로 인한 사회적 변동에 따라 10대조 처사공 휘 승희께서 현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시거하게 되었다. 기후 낙천공 휘 경화께서 현 의령군 영덕면 죽전리가는 골을 경유하여 이 곳 가락리 383번지에 신기를 잡아 시거한 이래 선친대에 이르기까지 200여년동안 세거하였다. 그러나 당대에 이르러 전통사회의 변천으로 인한 근대화의 물결에 따라 우리 모두가 경상남도 진주시 합천군 함안군 부산광역시 서울특시 등지로 이거함으로 지난 40여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곳 우리 가문의 세거사는 단절되고 선조의 얼이 서린 이곳에 방초만 무성하니 폐허의 통적만 발아보는 회한의 정을 금할 수 없어 후손들이 숭조의 정성을 모아 이 곳 시거지에 세덕사와 규정당을 창건하였는바 이에 즈음하여 우리 가문의 유구한 역사를 새겨 세거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