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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守抗日運動紀念碑(법수항일운동기념비문) 근원이 얕은 강물은 쉬 마르듯이 민족혼이 衰(쇠)한 나라는 외세로 인하여 그 근본을 잃기 쉽다. 우리 민족은 각축하는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에서 수난의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굽히지 않은 강인한 민족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번영이 이룩되었다. 일제가 2천만 동포의 숨통을 틀어막는 무단통치를 자행하고 있을 때인 1939는 4월 28일 이곳 법수에서는 학교 이전을 반대하는 계기로 한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300여명의 면민은 면장을 둘러메고 의령장으로 가서 장꾼과 더불어 대대적인 시위를 계획하고 강둑을 따라 이십여리를 행진하여 의령 백야에 이르러서 일본 군경과 마주쳤다. 잔학한 군경의 총검 앞에 무력한 시위 군중은 강제로 해산당하고 시위를 주동한 지사 29명은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