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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박상엽(朴尙燁)의 묘 ◆ 출생지: 경남 함안군 군북면 오곡리 598 ◆ 사망지: 함안군 군북면 시위현장 ◆ 생몰시기: 1856년3월25일 1919년3월20일 ◆ 공적사항: 1919년 3월 20일 군북면 군북장날 독립만세운동을 주동 시위를 전개하다 주재소의 유리창과 벽을 파괴하고 선두에서 만세 시위중 왜경의 흉탄에 맞고 현장에서 순국 ◆ 기타특기사항: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1996년 12월 함안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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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20일의 군북면 군북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9일의 함안읍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주동하였던 조상규(趙相奎)·조용효(趙鏞孝)·이재형(愛在 )·조정래(趙正來)·조성규(趙聖奎)·조경식(趙璟植)·조형규(趙炯奎) 등에 의하여 계획되었는데, 그들은 미리 태극기를 제작해 놓고 인근지역에 이 계획을 알리는 등 사전준비를 진행하였다. 이날의 독립만세운동은 오전 9시, 군북면 동촌리(東村里)의 신창학교(新昌學校)에서 50여명의 학생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는데, 이를 신호로 군북 장터에 있던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일제히 궐기하였다. 오후 1시경, 3천여명의 대대적인 시위군중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군북경찰주재소의 경찰과 이곳에 파견되어 있던 마산(馬山) 중포병대대 병력 16명이 출동하여 공포를 발사하며 시위대열을 해산시켰다. 오후 5시경, 5천여명의 시위군중은 다시 궐기하여 경찰주재소로 달려갔다. 사태의 급박함을 느낀 일본 경찰이 공포를 발사하자, 격노한 시위군중은 투석으로 대항하며 주재소의 유리창과 벽을 파괴하였다. 그러자 일본 군경은 잔인하게도 시위대열에 조준사격을 감행하여 21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18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때 선두에 서서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던 그도 적의 흉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