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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 고장에 겨레의 사표로서 영원히 추앙받을 분이 게셨으니 곧 서고 조선생이시다. 선생은 정절공 어계선생의 후손으로서 서기 1857년에 신창리에서 태어나시어 한평생 이 고장을 위하여 봉사하시다가 1929년에 향년 73세로 세상을 마치셨다. 선생은 어릴때부터 의표가 준수하고 재질이 뛰어나셨으며 자라서는 민중을 위하는 정신이 남달리 강하셨다. 선생은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봄바람이 이는 듯 온화하셨으나 불의를 배격하는 데는 된서리가 내리듯 엄격하셨다. 동리의 규약을 정하여 좋은 풍속을 일으키셨고 문창재를 세워 많은 후진들을 양성하셨다. 남의 기륭사에는 빈부귀천의 가림없이 몸소 찾아 도우셨고 마을의 송사는 친히 맡아 판결을 내리셨다. 초야에 게시면서도 마음은 나라 일을 걱정하시어 경술년 국변 당시에는 울분한 회포를 시로써 표현하셨으며 기미년 3.1의거 때에는 독립 투쟁에 앞장서서 민중을 봉기시키셨다. 만년에는 왜적의 학정에 시달린 민중의 쓰라림을 보다 못하시어 두 눈이 실명되셨으나 오히려 이를 다행으로 여기셨고 평생을 왜적에게 항거하는 정신으로 일관하셨다. 선생은 강직 청렴으로써 세상의 온갖 불의를 배제하셨고 인후박애로써 존비 귀천에 차별없이 대하셨으며 나라와 겨레를 사랑함으로써 왜적의 학정에 철저히 항거하셨다. 이러한 전생의 높고 곧은 정신은 우리 겨레의 거울이 될 것이므로 삼가 이를 돌에 새겨 길이 뒷세상에 전하려 한다. 백이산 푸른 빛은 천고에 변함없고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이를 돕던 문창재 맑은 경치 지금도 완연한데 그 정신 이 겨레에 길이 전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