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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곳 대사리 본제에서 출생하니 유시로부터 과인한 총명과 강선한 의지로 향리의 칭찬을 받았다. 부모와 함께 군북 사촌으로 이거한 후 서점에서 한학을 공부하면서 가사를 돕던 중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매 비분강개 끝에 동지를 규합하여 항일투쟁의 방안을 모색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요 원의 불길처럼 전국에 번질 무렵 공은 이희석 박상엽 이원필 조주규 조성규 외 여러 동지들과 비밀리에 서산서원에 모여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만들어 거사를 준비하고 3월 19일 함안읍에서 독립선언식과 시위군중을 선도하였는데 동지 수십명이 왜경에 체포되었으나 공은 탈출하여 군북으로 돌아와 다음날 다시 의거를 감행하였다. 이날 군북삼변에 운집한 삼천여 군중 앞에서 공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고 이어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벌이니 그 함성 천지를 진동하였다. 왜경과의 추돌에 흥분한 군중들이 주재소에 투석하자 동원된 왜 헌병들은 실탄을 발사하여 현장에서 순절한 분이 20명에 달했고 공은 피체되어 이 해 12월 1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출옥 후에도 옛동지들과 만세계를 조직하여 비밀리에 항일운동을 계속하였고 몽매에도 그리던 조국광복을 맞았으나 악형의 여독으로 1950년 향년 64세로 영서하였다. 배는 순흥 안씨 상만의 따님으로 슬하에 3남 5녀를 두었으니 남에 성립 성해 성호요 여서 금성 기경주 박유상 남평 문경현 광산 김명규 남양 홍재생이며 성립 남에 일규 이규 필규 민규 남에 용보이다. 1982년 건국공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고 이번에 정부의 애국지사 묘역 정화사업으로 묘도에 편석을 세워 행적의 일단을 새김은 만시지탄은 있으나 위훈에 보답하는 길이라 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