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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관야학교 유허비 본고장 평광은 예로부터 인천이씨의 집성촌으로 그 역사가 오백년에 이른다 일찍이 종중재실인 도천재에서 학문에 정진하여 훌륭한 인재와 선비들이 배출되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구한말 이후 시대의 변천과 함꼐 외세의 물결이 밀어닥친 민족의 수난기인 일제 암흑기에 분동태생인 이삼용 이수강은 '아는것이 힘이다'라고 외치며 문명퇴치의 일념으로 1927년 본동 중앙에 교사를 신축하여 야학을 개설하였다. 초대교장에 이태욱 학감에 이삼용 교사로 박기현 이수경 박윤강 이용대 이위주등이 학생지도에 열과 성을 다하여 주경야독의 기틀을 다졌다. 왜경의 감시하에서도 이삼용과 이수강은 교가를 지어 수업시작 전에 부르게 하고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임을 암암리에 역설하였다. 1930년에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니 남자는 사회 각문야로 진출하게 되었고 여자는 출가하여 동네의 길흉사에 관련된 예분 서찰등의 대필을 맡아 칭송이 자자하였다. 2차대전 말기에 왜경의 감시는 더욱 힘하여지고 끝내 왜경은 이 야학교가 불온분자를 양성한다는 구실로 개교한자 15년만인 1941년에 강제로 교문을 닫게 하였다. 1945년 광복후 다시 야학을 개설하여 이승환 이태영 이호근 이정근 이영생 이상근 노재성 이찬환 손영수등이 한글을 가르쳐 오다가 초등의무교육의 확대정책으로 자연히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한때 군북국민학교 명관분교로 활용된 적도 있었으나 현재는 동사무소로 되어있다. 1995년 을해 월일 스승을 기리는 제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