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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신 분으로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화를 남기고 있다. 부인 이장내 여사는 1889년 산인면 담안에서 출생 현모부덕을 갖춘 사리가 분명한 대쪽같은 여장부로 또한 인정이 넘치는 우리 지방의 사임당으로도 손색이 없는 분이셨다. 특히 두 분의 각별했던 이웃사랑은 1921년 이 자리에서 일으킨 구민사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보릿고개의 가난이 지난하던 당시 어려운 사람들을 모아 담화산 기슭의 돌을 깨어 방축을 쌓고 수로를 내어 논을 일구는 토목공사를 일으키셨다. 두 분은 바로 이 일의 설계자료 감리자인 동시에 함께 일하는 일꾼이기도 하였다. 홍수때 금천 냇물이 마을 앞을 쓸어가면 다시 옥답을 팔아 보수공사를 일으켜 노임을 나누고 집 없는 분들에게는 빈터와 재목을 어려운 이웃자녀들에게는 남몰래 학비를 도와주셨던 그 애틋한 선행을 어찌 다 여기에 새길 수 있으리요! 애석하게도 용섭공은 1944년 향년 54세로 작고 정동 뒷산에 1971년 별세한 부인과 쌍분으로 모셔져 있다. 슬하의 2남3녀중 장남이 창제씨는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상남도내 6개군 군수를 지냈으며 차남 강제씨는 대구사법학교 재학시 항일학생운동을 2년 6개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