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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여 공을 위시한 몇몇 동지는 약 2000여의 군민을 이끌고 선두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가 부르면서 만세를 외쳤다. 노도처럼 밀어닥처 경찰서를 처부수고 군수를 끌어내었다. 이로 인하여 왜경에 체포되고 2년 징역의 언도를 받아 영어의 고초를 겪었다. 당시 공의 나이는 창창 29세 피끓는 젊음을 조국을 위해 바쳤다. 그후 왜경의 압박이 심하여 중국에 망명하셨다가 광복과 더부러 귀국하셨다. 일본에 건너가셔서 우거하든 중 고국에 돌아오시지 못하고 1961년 7월 6일에 별세하시니 향년 70세였다. 근자 공의 유해는 자손의 따뜻한 손에 의하여 말없이 고구에 돌아와 고원에 묻혔다. 이제 꿈에도 잊지 못하였든 조국광복 투쟁 이력을 일편석에 새겨 후세에 전하다. 공의 배위는 전주이씨 효령대군 후예로서 부덕이 있었고 참서면재의 녀이시며 자에 진호 영진 형호 문호 여서에 경주 최기홍 손에 공용 문용 길성 조웅 민웅 외손이 황구이다. 태극기 높이들고 독립노래 부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