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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3.1독립운동 약사 경술국치로 주권을 잃어 인간의 기본권마저 짓밟히고 강압과 수탈로 암울한 생활을 할 때 고종의 인산을 계기로 조국의 독립과 자유와 평화를 쟁취하려는 기미항일독립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났다. 1919년 유림을 중심으로 군북독립만세 시위 계획을 세워 동지 규합과 군중동원을 획책하는 한편 3월 10일 서산서당에서 주동자들이 모여 군북 장날인 3월 20일(음력 2월 19일)에 총궐기하기로 하였다. 3월 20일 오전 9시경 주동자들과 학생 50여명이 신창야학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장터로 향했다. 그리고 준비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뭇짐에 숨겨 거사장소로 운반되었다. 오후 1시 군북냇가에는 3,000여명의 시위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나누어 갖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에 들어갔다. 상인과 장꾼들이 합세하니 군중은 5,000여명으로 불어나고 군북왜경주재소를 포위압박 돌을 던져 공격하니 왜경은 혼비백산하여 마산왜경과 진해경포병대대에 지원을 요청했고 출동한 왜군경은 시위군중에 먹물을 뿌리며 무차별 사격을 가해왔다. 이로 인해 20여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수십명이 체포되어 대구와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부상자는 부지기수이며 먹물 묻은 시위자를 무차별 체포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군북 3.1독립운동은 사상자와 시위군중의 수가 그 규모로 보아 전국에서 손꼽을 수 있는 항일시위였다. 세월은 흘러 그때 그 함성 사라졌으나 아름다운 산하는 그대로 남고 선열의 고귀한 뜻 영원히 청사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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囗 군북 3.1독립운동참여자 〈순국 및 포상을 받으신 분〉 김삼도(金三道) 김우곤(金宇坤) 나수범(羅守凡) 박상엽(朴尙)燁 박원개(朴元介) 박주범(朴注範) 박학숙(朴鶴淑) 송문호(宋文鎬) 이경민(李卿敏) 이경흠(李卿欽) 이원필(李元弼) 이재형(李在衡) 조성기(趙性基) 조성술(趙性述) 조용규(趙鏞珪) 조용대(趙鏞大) 조용섭(趙鏞燮) 조용태(趙鏞台) 조주규(趙周奎) 조호진(趙虎振) 〈옥고를 치르시거나 포상을 받으신 분〉 김용이(金用伊) 노수정(盧守貞) 송길호(宋吉鎬) 이점수(李点守) 이점시(李点時) 이증출(李增出) 장종대(張宗大) 조경규(趙璟奎) 조경식(趙璟植) 조동규(趙銅奎) 조상규(趙相奎) 조석규(趙碩奎) 조성규(趙聖奎) 조용구(趙鏞九) 조용국(趙鏞國) 조용호(趙鏞浩) 조창규(趙昌奎) 조정규(趙定奎) 조형규(趙炯奎) 〈부상을 당하시거나 참여기록이 있으신 분〉 김계주(金癸珠) 나원이(羅元伊) 박학찬(朴鶴贊) 오주근(吳周根) 이태영(李泰永) 조갑이(趙甲伊) 조경범(趙京凡) 조문규(趙文奎) 조민제(趙民濟) 조방규(趙邦奎) 조용근(趙鏞根) 조용진(趙鏞進) 조정래(趙正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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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현황 ○ 사업명 : 군국3.1독립운동기념탑건립 ○ 위치 : 함안군 군북면 중암리 204 ○ 부지면적 : 5,560㎡ ○ 사업비 : 9억5천만원 ○ 사업기간 : 2001.3~2004.2 ○ 준공 : 2004.3.1 ○ 시행 : 군북3.1독립운동기념사업회 ○ 설계 및 시공 : ㈜아름다운세상 작품설명 조형개념은 상태극과 4개의 우주론적 체계에 근거하여 함안 군북면의 올곧은 선비정신의 자긍심을 천원지방사상에 따라 땅(세모)과 하늘(원) 사이에 사람(삼각형)의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좌우 수호상으로 수호하도록 조형화하였다. 평면적으로는 크기가 19.10m×17m인 것은 1919년의 독립운동이 오늘날 군북면 17개리의 행복한 나날의 기초였음을 나타내었으며, 세 개의 주탑은 상태극 형태로서 군북의 명산인 백이산, 방어산, 삼봉산을 상징하였다. 입면적으로는 21세기를 상징하여 탑 높이 21m의 하단부 중앙에 위패실을 두고, 상륜부에는 아라가야 토기형상으로 이웃사랑의 테두리를 연결하고 선열들의 혼백이 승천하는 의미로 촛불형상을 중앙에 두었다. 조각가 : 이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