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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창간호·2012년 봄 글 좌담회개최」, 『동아일보』1931. 10. 29) 아울러“외래 어를 자국어로 번역하여, 자국어의 기초를 세우고 외래어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함. 1.외래어 사용 축소 방법: 외국어 사용을 좋아하는 무리의 외래어 보급을 방지할 것, 외래어 를 조선어로 번역하여 쓰도록 힘쓸 것. 2. 외래어 사용의 경 우에도 외래어의 원어음대로 쓰기, 고유명사도 본음대로 쓸 것, 조선문자가 아닌 표기나 부호는 쓰지 말 것, 조선말소리 에 없는 외국어음을 억지로 쓰지 말 것 (F음은 ㅇㅍ 아닌 ㅍ로, V음은 ㅇㅂ아닌 ㅂ로 쓴다.) 「외래어의 정화」 『동아일보』1931. 1. 1) 7월부터 하기 한글강습회를 개최하여 1934년까지 계속함. 9월한글날을 조선어학회 주최로 거행하기로 하여 1936년까지 실 시함. 1932(40세) 5월 조선어학회 기관지『한글』을 복간함. 1933(41세) 1월 조선연무관 이사. 10월 29일 동지들과 공동 연구하여‘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 1934년에서 1935년까지『서울시 보』(순한글신문)발간 . 1935(43세) 3월 조선기념도서출판관을 조직함. 1936(44세)6월 조선중앙일보사가 실시한 한글 강연에 참여함. 8월 발해국의 수도였던 동경성의 성지와 왕릉을 답사함. 10월 28일 동지들과‘사정한 조선어표준말모음’발표. 1937(45세) 1월 조선과학지식 보급회 이사. 9월부터 조선씨름협회 조직에 관여. 1939(47세) 조선씨름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어 1940년까지 활동. 1940(48세)3월‘조선말 큰사전’조판 시작. 6월 동지들과‘외래어 표기법 통일안’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