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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을에 사는 안용호 남영진 최성원 남상필 등이 4월 2일 최성원씨댁(봉현면 대촌동)에 모여 항일독립만세운동을 거사하기로 논의 중 4월 9일 풍기장날 풍기싸전(미곡전)에서 거사하기로 뜻을 모아 계획이 구체화됨을 접하고 공은 즉시 찬동하고 항일 만세운동을 준비하는데 온 힘을 쏟아 손수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인근동리에 동지들을 포섭하는데 힘을 다하였다. 1919년 4월 9일 오후 3시 30분경 독립선언문과 태극기를 장에 모인 남녀노소 군중에게 나누어 주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치며 백여 군중이 태극 물결을 일으키며 전지를 진동시켰다. 당시 풍기에 주재중이던 일본헌병들은 총을 쏘며 몰려나와 안용호 남영진 최성원 세분을 체포하여 주재소로 끌고 갔다. 이 현장을 목격한 용준 공을 비롯한 백여 군중이 울분을 터트려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태극 물결을 일으켜 노도처럼 주재소 앞마당에 몰려가 붙들려간 세사람을 풀어달라고 소리쳤지만 더욱 폭악해진 일본헌병들은 다시 황정흠 김용준 남상필 황정흠 이화백 씨 등을 체포하고 총칼로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일로 말미암아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그들의 소위 보안법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