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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서기도 하였으나 대세를 걷잡을 길 없이 마침내 경술국치를 당하고야 말았다. 공은 땅을 통곡하며 어찌 저 원수들과 더불어 한 하늘 아래 같이 서랴. 하시고 곧 나라와 목숨을 함께 하려했으나 한 평민이라 여기에 생각되는 바 있어 그날부터 머리에 패랭이를 쓰고 몸에 야복을 걸쳐 한 죄인으로 자처하면서 촉목상심 이래 수십여년 벽지산촌으로 표박전전하시더니 갑술년 겨울 이 고장 생고개에 거소를 정하고 이에 고사리를 씹으며 괴로운 만년을 보내셨으나 긴 밤은 새지 않고 하청의 때는 까마득한데 1940년 위적의 단말마적 식민폭정은 드디어 우리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남달리 지녔던 공의 의로운 피는 팔순노구로서 그 마지막 심지를 불태우며 국토 빼앗김을 보고도 내 살아남아 이제 최후로 우리 핏줄의 상징인 성명까지 빼앗기게 되니 이 겨레의 욕된 꼴을 어찌 차마 눈으로 또 다시 보리오 하고 결연히 자결의 뜻을 읊으시되 「삶의즐거움보다 더 좋은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죽음을 보기를 가볍게 하리오. 돌아가서 조선들을 뵈옵는날에 오직 옛 성명이나마 그대로 전하리로다.」하고는 식음을 끊으신지 36일, 자질들에게 명하여 「혜인진성이현구지구」라고 쓰게 한 판자 위에서 드디어 운명하시니 이날이 경진년(1940) 8월 초6일 향년 79세이셨다. 아! 이 어찌 다 쓰러져가던 3천만 겨레를 향한 처절한 경고가 아니였던가. 슬프다. 공이 가신지 어언 30년, 우리는 그동안 나라를 도로 찾고 성명을 되찾음에 공을 추념하는 마음 더욱 금할 길 없어 이에 깨끗한 정성으로 생현계를 모아 지금 이곳 공이 순절하신 마을 어구에 돌을 세우고 그 내력을 새겨 무궁한 우리 겨레의 한 귀감으로서 길이 우러르고자 하는 바이다.